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6

쇼팽 녹턴, 폴로네이즈 6번 ‘영웅’, 자장가, 환상 즉흥곡, 전주곡, 피아노소나타 3번 : 필리프 코파체프스키 - 사람의 일 : 천양희

사람의 일 / 천양희 ​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시집 『오래된 골목』(창비, 2003)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프레데리크 쇼팽Frédéric Chopin(1810-1849) 녹턴 4번Nocturne in F major, Op. 15 No. 1 녹턴 2번Noctu..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아름다운 번뇌 : 복효근

아름다운 번뇌 / 복효근 ​ 오늘도 그 시간 선원사 지나다 보니 갓 핀 붓꽃처럼 예쁜 여스님 한 분 큰스님한테서 혼났는지 무엇에 몹시 화가 났는지 살풋 찌뿌린 얼굴로 한 손 삐딱하게 옆구리에 올리고 건성으로 종을 울립니다 세상사에 초연한 듯 눈을 내리감고 지극정성 종을 치는 모습만큼이나 그 모습 아름다워 발걸음 멈춥니다 이 세상 아픔에서 초연하지 말기를, 가지가지 애증에 눈감지 말기를, 그런 성불일랑은 하지 말기를 들고 있는 그 번뇌로 그 번뇌의 지극함으로 저 종소리 닿는 그 어딘가에 꽃이 피기를...... 지리산도 미소 하나 그리며 그 종소리에 잠기어가고 있습니다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달아실, 2017)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

슈베르트 즉흥곡 넷D899, 즉흥곡 넷D935 : 그리고리 소콜로프 - 당신과 조용히 늙어가고 싶습니다 : 문계봉

당신과 조용히 늙어가고 싶습니다 / 문계봉 - 운유당(暈遊堂) 서신(書信) ​ 오늘 차를 타고 오다가 문득, 당신과 함께 조용히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안타깝지도 슬프지도 않을 만큼의 거리를 운명처럼 인정하며, 또한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욕망도 접어두고, 다만 지켜보면서, 서로를 많이 걱정하고, 가끔 당신의 어깨와 머리카락과 마른 몸을 만지며 그렇게 함께 늙어가는 삶, 앞산의 능선을 닮아가는 주름과 그윽한 눈매와 부는 바람에 보기 좋게 흩날리며 헝클어지는, 하얗게 센 머리칼과 너그러운 눈빛을 함께 만들어가는 삶, 그런 삶을 당신과 함께 살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순전히 천연덕스럽게 투명한 햇살과 짙푸른 저 가을 하늘 때문입니다. 생각 뒤의 먹먹함은 온전히 제 ..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내 마음속 風磬* 하나 · 1​ : 허형만​

내 마음속 風磬* 하나 · 1 / 허형만 ​ 복길리 바닷가에 갔었지 ​ 수평선 먹구름 그물에 걸린 태양이 온몸으로 파닥거릴 때 파닥거리다 지쳐 마침내 피를 토한 채 꼴깍! 숨이 멈추고 핏물 토한 채 쓸쓸함 위로 어선 서너 척 떠서 흔들리고 흔들릴 때 파도 소리 바람 소리로 잊었던 사람들 총총총 별로 돋을 때 ​ 내 마음속 풍경 하나 어찌 그리도 울어쌓든지. ​ *풍경: 처마 끝에 달아 바람에 흔들려 소리가 나게 하는 경쇠. ​ - 『영혼의 눈』(허형만, 문학사상사, 2002)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바람에 실어 : 박남준

바람에 실어 / 박남준 ​ ​ 어찌 지내시는가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하늘의 해, 지는 노을 저편으로 수줍게 얼굴 내어미는 아미 고운 달, 그곳에도 무사한지. 올 장마가 길어 지루할 거라느니 유별나게 무더울 거라느니,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 ​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니었지 초복인가 했더니 어느덧 말복이 찾아들고 입추라니, 가을의 문턱에 들었다니 아,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 이곳 모악의 밤도 이제 서늘한 입김 피워올리니 따듯한 불기가 간절하구려. ​ 보고 싶구려 내 날마다의 밤 그리움으로 지핀 등 따듯한 온돌의 기운 바람에 실어 보내노니 어디 한번 받아보시려나 서리서리 펼쳐보며 이 몸 생각, 한 점 해 주실런가. ​ ​ -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박남준, 문학동네, 2000) 로그인만 하..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 김용택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 김용택 ​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며 햇살을 쏟아냅니다 눈이 부시네요 길가에 있는 작은 공원 낡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대를 기다립니다 어디에서 그대를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지요 차들이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늘 보던 풍경이 때로 낯설 때가 있지요 세상이 새로 보이면 사랑이지요 어디만큼 오고 있을 그대를 생각합니다 그대가 오는 그 길에 찔레꽃은 하얗게 피어 있는지요 스치는 풍경 속에 내 얼굴도 지나가는지요 참 한가합니다 한가해서, 한가한 시간이 이렇게 아름답네요 그대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낡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대를 생각하다가 나는, 무슨 생각이 났었는지, 혼자 웃기도 하고, 혼자 웃는 것이 우스워서 또 웃다가, 어디에선 지 불쑥 또 다른 생각이 날라오기도 합니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1905년' :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토마스 쇤더고르 - 나무 : 류시화

나무 / 류시화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푸른숲, 1991첫판, 1992)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눈부처 : 정호승

눈부처 / 정호승 ​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 눈부처: 눈동자에 비치는 사람의 형상​ ​ 《새벽편지》(정호승, 민음사. 2015)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 I. Allegro ma non troppo II. Larghetto III. Rondo..

슈베르트 즉흥곡 넷D899, 즉흥곡 넷D935 : 그리고리 소콜로프 - 눈물 : 김현승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 시집 『가을의 기도』(김현승, 미래사, 1991)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즉흥곡 1번Impromptu 1 in C minor Op. 90, D. 899 즉흥곡 2번Impromptu Nr. 2 in E flat major Op. 90, D 899 즉흥곡 3번impromptu, No. 3 in G flat major (Andante) Op. 90, D. 89..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참 좋은 당신 : 김용택

참 좋은 당신 / 김용택 ​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 -(김용택, 위즈덤하우스, 2015)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 I. Allegro ma non troppo II. Larghetto III. Rondo - Allegro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imitri Chostak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