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6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2번, 3번 : 기돈 크레머 - 마지막 지상에서 : 김현승

마지막 지상에서 / 김현승 산까마귀 긴 울음을 남기고 지평선을 넘어갔다.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넋이여, 그 나라의 무덤은 평안한가. ​ - 시집 『가을의 기도』(김현승, 미래사, 1991)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1번Violin Partita no. 1 in B minor BWV 1002 Ⅰ. Allemanda Ⅱ. Double Ⅲ. Corrente Ⅳ. Double. Presto Ⅴ. Sarabande Ⅵ. Double Ⅶ. Tempo Di Borea Ⅷ. Double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바이올린 in front of the gleaming gold altar of the Church of St...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번 : 그리고리 소콜로프 - 조금은 아픈​ : 김용택

조금은 아픈​ / 김용택 ​ ​ 가을은 부산하다. 모든 것이 바스락거린다. 소식이 뜸할지 모른다. 내가 보고 싶고 궁금하거든 바람이 이는 풀잎을 보라. 노을 붉은 서쪽으로 날아가는 새떼들 중에서 제일 끝에 나는 새가 나다. ​ 소식은 그렇게 살아 있는 문자로 전한다. 새들이 물가에 내려 서성이다가 날아올라 네 눈썹 끝으로 걸어가며 울 것이다. ​ 애타는 것들은 그렇게 가을 이슬처럼 끝으로 몰리고 무게를 버리며 온몸을 물들인다. ​ 보아라! 새들이 바삐 걸어간 모래톱, 조금은 아픈 깊게 파인 발톱자국 모래들이 허물어진다. ​ 그게 네 맨살에 박힌 나의 문자다.​ ​ ​​ 『울고 들어온 너에게』(김용택, 창비, 2016)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피아노소나타..

브루크너 교향곡 9번 : 이반 피셔 - 삶 : 김용택

삶 / 김용택 ​ 매미가 운다. 움직이면 덥다. 새벽이면 닭도 운다. 하루가 긴 날이 있고 짧은 날이 있다. 사는 것이 잠깐이다. 사는 일들이 헛짓이다 생각하면, 사는 일들이 하나하나 손꼽아 재미있다. 상처받지 않은 슬픈 영혼들도 있다 하니, 생이 한번뿐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숲 속에 웬일이냐, 개망초꽃이다. 때로 너를 생각하는 일이 하루종일이다. 내 곁에 앉은 주름진 네 손을 잡고 한 세월 눈감았으면 하는 생각, 너 아니면 내 삶이 무엇으로 괴롭고 또 무슨 낙이 있을까. 매미가 우는 여름날 새벽이다. 삶에 여한을 두지 않기로 한, 맑은 새벽에도 움직이면 덥다. ​ -(김용택, 위즈덤하우스, 2015)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1824~1896) 교향곡 9번Sinfonie Nr. 9 d-..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그냥 존재하는 사람 : 최승호

그냥 존재하는 사람 / 최승호 ​ 세상에 말없이 그냥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슬, 낙엽, 눈사람, 달무리, 노을, 수평선이 그렇다. 세상에는 말없이 그냥 단순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되려 하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사람, 무사인無事人. ​ 너는 좀 바보 같은 나무물고기나 무심한 쇠물고기가 되었느냐. 그걸 물어보려고 바람은 산사의 풍경을 뎅그랑 뎅그랑 흔들어댄다. ​ - 『누군가의 시 한 편』(최승호, 달아실, 2018)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 I. Allegro ma non tropp..

바흐 피아노협주곡 5번, 바이올린 두 대 협주곡, 비발디 ‘사계’ : 이반 포체킨, 미하일 포체킨, 유리 파보린, 필리프 치제프스키 -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 이외수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 나즈막히 그대 이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 『그대 이름 내 가슴에 숨 쉴 때까지』(이외수, 해냄, 2006, 50-51쪽)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피아노협주곡 5번Concerto No. 5 for Piano and Orchestra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바이올린 두 대 협주곡Concerto for..

브람스 바이올린협주곡 : 막심 벤게로프, 가보르 타카치-나기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아즈 사강, 김남주 옮김, 민음사, 2019, 57쪽)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1833-189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D-Dur für Violine und Orchester op. 77 I. Allegro non troppo II. Adagio III.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 vivace MÁV Symp..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살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김남주, 창작과비평사, 1995, 128-1..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김점선의 웃는 말 그림 판화 : 류근

김점선의 웃는 말 그림 판화 / 류근 ​ ​ 당신과 내가 얼굴에 입이 반, 그리고 또 눈이 나머지 반의 반인 세상으로 한세상 그렇게 어울려 기대어 버티어 건너갈 수 있으면 좋겠네 상처도 없고 그리움도 없고 약속도 없는 생애까지 파랗고 하얗고 노랗게 남김없이 살아낼 수 있으면 좋겠네 저녁이었으면 좋겠네 ​ 또는 아무 때나 아침이 오고 내일이 와서 다음 생의 다음 날이었으면 좋겠네 사람아, ​ - 『어떻게든 이별』 (류근, 문학과지성사, 2016)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 I. Allegro ma non troppo II..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사라진 서점 : 고형렬

사라진 서점 / 고형렬 ​ 드르륵, 조용히 문을 열고 흰눈을 털고 들어서면 따뜻한, 서점이었다 신년 카드 옆엔 작은 난로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 높은 천장까지 가득 차 있었다 아 추워, 언 손을 비비면 그 12월임을 알았다 멀리 있는 사람이 그리워 좋은 책 한 권 고르다 보면 어디선가 하늘 같은 곳에서 새로운 날이 오는 것 같아, 모든 산야가 겨울잠을 자는 외로운 산골의 한낮 마음만한 서점 한쪽엔 생의 비밀들을 숨긴 책들이 슬픈 책들이, 있었다 다시 드르륵, 문을 열고 단장된 책들이 잘 꽂혀 있는 그 자리에 한참, 서고 싶다 그대에게 소식을 전하고 새로운 마음을 얻으려고 새 눈 오던 12월 그날처럼 ​ - 『김포 운호가든집에서』(고형렬, 창작과비평사, 2001)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눈사람 : 이재무

눈사람 / 이재무 ​ 눈 내린 날 태어나 시골집 마당이나 마을회관 한 구석 혹은 골목 모퉁이 우두커니 서서 동심을 활짝 꽃 피우는 사람 꽝꽝 얼어붙은 한밤 매서운 칼바람에도 단벌옷으로 환하게 꼿꼿이 서서 기다림의 자세 보여주는 표리가 동일한 사람 한 사흘, 저를 만든 이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 마음의 심지에 작은 불씨 하나 지펴놓고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이 이 세상 가장 이력 짧으나 누구보다 추억 많이 남기는 사람 ​ - 시집 『경쾌한 유랑』(이재무, 문학과지상사, 2011)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 I.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