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6

바흐 영국 모음곡 3번,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3번 ‘열정’,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21번 : 루돌프 부흐빈더 - 나무의 마음 : 홍성란

나무의 마음 / 홍성란 매일을 걸어도 그 길이 좋은 것은 무심히 그저 나를 바라만 보기 때문이다 나무가 나를 바라보듯 볼 수 있다면 어떤 옷을 입어도 어떤 신을 신어도 무슨 짓을 해도 그저 무심히 보는 나무가 나를 바라보듯 볼 수 있다면 — 시조시집 『매혹』 (홍성란, 현대시학사, 2022) 로그인만 하면 볼 수 있습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영국 모음곡 3번English Suite No. 3 in G minor. BWV 808 Ⅰ. Prelude Ⅱ. Allemande Ⅲ. Courante Ⅳ. Sarabande Ⅴ. Gavotte Ⅰ, Ⅱ Ⅵ. Gigue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피아노소나타 2..

시벨리우스 슬픈 왈츠, 마그누스 린드베르크 피아노협주곡 3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 유자왕, 클라우스 마켈라 - 낙화, 첫사랑 : 김선우​

낙화, 첫사랑 / 김선우 ​ ​ 1 ​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 ​ 2 ​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김선우, 문학과지성사, 2007, 12-13쪽) ​ 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1865-1957) 슬픈 왈츠Valse ..

슈만 '어린이 정경', 몬테로 즉흥곡, 쇼스타코비치 피아노소나타 2번, 쇼팽 발라드 : 가브리엘라 몬테로 - 여름꽃 : 유승도

여름꽃 / 유승도 ​ 그리움이 쌓여 피어나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년의 여인으로 다가온다 맨가지의 애처로움 끝에 피어 숲의 푸르름을 불러내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나뭇잎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게 웃는다 울긋불긋 커다란 소리로 거친 산야를 수놓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작은 몸짓으로 소리없이 피고 또 진다 -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유승도, 창작과비평사, 2013) Before the Grand Competition - Master Recitals 1 - 19 October 2020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 '어린이 정경'Kinderszenen (Scenes from Childhood), Op. 15 가브리엘라 몬테로Gabriela Mo..

드뷔시 ‘영상’ 2권, 쇼팽 바르카롤, 녹턴 8번, 발라드 4번, 프랑크 전주곡, 코랄과 푸가,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 니콜라이 루간스키 - 편지 : 신경림

편지 / 신경림 -시골에 있는 숙에게 ​ 신새벽에 일어나 비린내 역한 장바닥을 걸었다. 생선장수 아주머니한테 동태 두 마리 사 들고 목롯집에서 새벽 장꾼들과 어울려 뜨거운 해장국을 마셨다. ​ 거기서 나는 보았구나 장바닥에 밴 끈끈한 삶을, 살을 맞비비며 사는 그 넉넉함을, 세상을 밀고 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 생각느니보다 삶은 더 크고 넓은 것일까, 더 억세고 질긴 것일까. 네가 보낸 편지를 주머니 속으로 만지면서 손에 든 두 마리 동태가 떨어져나갈 때까지 숙아, 나는 걷고 또 걸었구나, 크고 밝은 새해의 아침해와 골목 어귀에서 마주칠 때까지 걷고 또 걸었구나. ​ ​ -『달 넘세』(신경림, 창작과비평사, 1985, 1998)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1862-1918) ‘영상’..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번, 라흐마니노프 코렐리 주제 변주곡, 쇼팽 발라드 4번, 차이콥스키 소품 열여덟에서 5번 ‘명상’, 프로코피예프 피아노소나타 7번 : 데니스 마추예프 - 아시는지 : 최..

아시는지 / 최승자 ​ 아시는지? 어느 날 갑자기 라면 먹고 싶은 것, 살고 싶음의 뿌리 그리하여 살아 있음의 뿌리 되찾고 싶은 것. ​ 그래, 어느 날인가 몇 명의 문인이 라면이 한국 문학사에 끼친 공로에 대해 얘기한 적도 있다만, ​ 오 들끓는 식욕으로 다가오는 라면, 고통과 쾌락의 두 약재로 빚어진 우리 시대의 당의정을 아시는지? ​ 불현듯 식욕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언가 골수에 사무친 것이다. 저 충청도 산간의 시래기 국을 못 잊듯, 저 도시 변두리의 라면을 못 잊듯. -『기억의 집』(최승자, 문학과지성사, 1989)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피아노소나타 3번Piano Sonata No. 3 in C major, Op. 2, No. 3 I. Alle..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풀 : 김수영

풀 / 김수영(1921~1968)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민음사, 2004, 375쪽)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Piano Sonata No. 29 in B-flat major, Op. 106 "Hammerklavier" I. Allegro ​ II. Scherzo : Assai vivace ​ I..

슈베르트 즉흥곡 넷 D. 899, 피아노 소품 셋,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유월 : 이재무

유월 / 이재무 ​​ ​ 그늘을 편애하는 달 우람한 그늘의 등이나 어깨에 기대 혹은 그늘을 홑이불로 끌어다 덮고 누워 생을 다녀간 이들에게 나는 슬픔이었을까 기쁨이었을까 과연 그늘이었을까 왜 항상 그들은 그이고 나는 나였을까 시서늘한 그늘 서너 바가지 푹 퍼서 등에 끼얹으며 이 생각 저 생각에 그늘 깊어지는, 한 해 가운데 정서의 키가 가장 웃자라는 달 ​ -(이재무, 실천문학사, 2014) ​ Grigory Sokolov plays Schubert, Beethoven, Rameau, and Brahms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즉흥곡 1번Impromptu 1 in C minor Op. 90, D. 899 즉흥곡 2번Impromptus Nr. 2 in E flat m..

바흐 파르티타 1번,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7번,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14번, 악흥의 순간 여섯 : 그리고리 소콜로프 - 사람의 일 : 천양희

사람의 일 / 천양희 ​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 - 『오래된 골목』(천양희, 창비, 2003)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Live in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2015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

브람스 현악사중주1번 : 벨체아사중주단 - 낙타의 생 : 류시화

낙타의 생 / 류시화 ​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류시화, 열림원, 2015)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현악사중주1번String Quartet No. 1 in C Minor, Op. 51 No. 1 (186..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7번, 8번, 9번 : 예루살렘 사중주단 - 사상의 거처 : 김남주(1946-1994)

"남의 자유 억누르고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남의 밥 앗아 먹고 배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압제자 말고 부자들 말고는" ('이 세상에' 중) - 중에서 "그대는 내 안에 든 작은 새요. 내 품 안에 꽉 찬 작은 새란 말씀이오. (중략) 그러나 몸 전체가 평화요 사랑인 그대는 내 곁에 없소. 이게 절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 ('몸 전체가 평화여 사랑인 그대' 중) - 중에서 사상의 거처 / 김남주(1946-1994)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