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6

바흐 바이올린소나타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 프랑크 페터 짐머만, 엔리코 파체 - 가을입니다 : 김경미

가을입니다 / 김경미 며칠 사이에 복사지처럼 얇게 느껴지는 여름옷들 그 복사지로는 물들기 시작한 가을 은행잎과 단풍잎들 다 베낄 수 없어서 두툼한 노트 한 권 스웨터 한 벌 마련한 가을입니다 가을 강물 보러 왔는데 갈대만 보이는 계절입니다 반송되어온 편지묶음 같은 갈대들 세상 모든 감정 뒤섞여 뭐라 말할 수 없는 가을입니다. -《카프카식 이별》(김경미, 문학판, 2020, 264쪽)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바이올린과 쳄발로 소나타Sonata for violin and cembalo(BWV 1014-BWV 1019) 바이올린소나타 1번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B minor BWV 1014 프랑크 페터 짐머만Frank Pe..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협주곡 1번, 바이올린협주곡 2번 : 파벨 밀류코프, 알렉산드르 슬라드코프스키 - 알리나 이브라기모바,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여름은 가고 / 정희성 가을은 허공이 깊어가는 계절 철 지난 바닷가에서 고개 숙인 채 모래를 차며 걷고 있는 저이도 잃어서는 안될 무얼 잃은 걸까 오래 지니고 있던 뜨거운 것들을 잃어버린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 오오 지나온 일들을 생각느니 서쪽 허공을 헤아릴 수나 있겠는가 젖은 수평선이 그렁그렁 눈시울에 와 굽이칠 뿐 -(정희성, 창비, 2013)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Concert on the Dmitri Shostakovich's birthday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j Schostakowitsch(1906-1975) 바이올린협주곡 1번Violinkonzert Nr. 1 für Violine und Orchester a-Moll op. 77 I. Nocturne (Modera..

베토벤 교향곡 9번 : 알렉산드르 루딘 - 그런 저녁이 있다 : 나희덕

그런 저녁이 있다 / 나희덕 ​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며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나희덕, 창비, 1994)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

베토벤 교향곡 4번 : 크리스티안 예르비 - 결심 : 전욱진

결심 / 전욱진 ​ 휘청거리다 넘어지려다 그래 무너지자, 하고 마음먹은 나를 옆에서 꼭 붙잡는 사람은 마치 곁에 있는 사람처럼 ​ 그리워하지도 잊지도 않은 채 마음의 눈으로 보았다 절대로 지지 말라는 듯 무너지는 마음 정도는 괜찮다는 듯 ​ -『여름의 사실』(전욱진, 창비, 2022) ​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피아노협주곡 1번Klavierkonzert Nr. 1 in C-Dur, Op. 15 Ⅰ. Allegro Ⅱ. Largo Ⅲ. Rondo - Allegro scherzando K. Järvi "White Dragon", fantasy for Viola and Orchestra (Dedicated to Yuri B..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 마리스 얀손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 조용한 일 : 김사인

조용한 일 / 김사인​ ​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창비, 2006초판, 2009)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교향곡 3번 ‘영웅’ 3. Sinfonie in Es-Dur op. 55 '영웅'„Eroica“ (Heroische Sinfonie) I.​ Allegro con brio II. Marcia funebre: Adagio assai in C minor III. Scherzo: Allegro vivace IV. Finale: Allegro molto Bav..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번 : 그리고리 소콜로프 - 이 가을에 나는 / 김남주

이 가을에 나는/ 김남주 ​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 옥일까 대전 옥일까 아니면 대구 옥일까 ​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 내려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그들과 함께 나도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오라 풀고 사슬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 한번 나도 걷고 싶다 하늘 ..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 백석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 백석 ​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바흐 바이올린소나타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 프랑크 페터 짐머만, 엔리코 파체 - 가을 편지 : 김용택

가을편지 / 김용택 ​ 귀뚜라미가 웁니다. 귀뚜라미 울면 이불을 끌어다 덮는 찬바람이 불지요. 벼들이 패고, 수수모가지에 참새들이 앉고, 억새가 핍니다. 하얀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는 강가에 가고 싶습니다. 강에 언덕에 그대 마음 가장자리에 잔물결이 와닿겠지요 강가에 서서 서쪽으로 지는 가을 하늘의 노을도 보고 싶고 노을이 빠진 강물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그 당신을요. ​ - 『속눈썹』(김용택, 마음산책, 2011)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바이올린과 쳄발로 소나타Sonata for violin and cembalo(BWV 1014-BWV 1019) 바이올린소나타 1번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B minor BWV ..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 마리스 얀손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 조용한 일 : 김사인

조용한 일 / 김사인​ ​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창비, 2006초판, 2009)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교향곡 3번 ‘영웅’ 3. Sinfonie in Es-Dur op. 55 '영웅'„Eroica“ (Heroische Sinfonie) I.​ Allegro con brio II. Marcia funebre: Adagio assai in C minor III. Scherzo: Allegro vivace IV. Finale: Allegro molto Ba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