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6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 엘리자베스 레온스카야 - 내게 당신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 조병화

내게 당신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 조병화 ​ 씨를 뿌리는 사람은 생명을 뿌리는 사람이어라 ​ 나무를 심는 사람은 지구에 세월을 심는 사람이어라 ​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 사람은 생명을 뿌리고, 세월을 심는 사람이어라 ​ 아, 그것은 스스로로는 다 걷을 수 없는 꿈을 심는 일이어라 스스로로는 다 볼 수 없는 세월을 심는 일이어라 ​ 내게 당신의 사랑이 그러하듯이 ​ -《조병화》(조병화, 문학사상사, 200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피아노협주곡 23번Klavierkonzert Nr. 23 A-Dur KV 488 I. Allegro II. Adagio III. Allegro assai NDR Radiophilharmonie 엘리자베스 레온..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오후의 그늘 : 강연호

오후의 그늘 / 강연호​ ​ 오후의 그늘 아래 당신이 앉고 당신의 그늘에 기대 나는 누웠지 물 고인 돌확에 부레옥잠 떠다니듯 그늘에 그늘이 깊어 잠들기 좋았으나 그보다는 나는 영원, 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었는데 자리 바꿔 앉기 놀이나 하자는 듯 그늘은 심심해서 시샘해서 조금씩 자리를 바꿔 앉네 나뭇잎 한 장이 눈을 가리고 바람인지 햇살인지 영원이란, 영원히 순간이지 술래마냥 속삭이네 오후의 그늘은 문득 늙고 당신의 그늘은 자취가 없네 물 고인 돌확에 부레옥잠 떠다니듯 나는 일어나 빙빙 도네 누울 자리가 없네 앉을 자리조차 없네 - 『기억의 못갖춘마디』(강연호, 문예중앙, 2012)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기억형상합금 : 공광규

기억형상합금 / 공광규 ​ 겨우내 참새들이 와서 놀던 쥐똥나무 울타리 가는 나뭇가지에 새잎이 참새 발가락만큼 돋았다 참새는 가는 발가락으로 나뭇가지를 붙잡았을 것이고 발가락이 붙잡고 있던 가는 나뭇가지에는 체온이 가는 참새 발가락만큼 묻어 있었을 것이다 나뭇가지들은 참새 발가락 체온을 기억했다가 쥐똥나무 어린잎을 체온만큼 내밀어주고 있는 것이다 - 『담장을 허물다』(공광규, 창비, 2013)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vo 'February' 사육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 '1905년' :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토마스 쇤더고르 - 기억 : 문정희

기억 / 문정희 ​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 일시에 세상이 흐린 화면으로 바뀌었다 네가 남긴 것은 어떤 시간에도 녹지 않는 마법의 기억 오늘 그 불꽃으로 내 몸을 태운다 ​ - 문정희, 『나는 문이다』(민음사, 2016)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1839–1881) “Dawn on the Moscow River” – introduction to the opera “Khovanshchina” (instrumentation by D. Shostakovich) Three piano works orchestrated by Y. Butsko: “Near the southern coast of Crimea, Gurzuf at Ayu-Dag”..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1번, 2번 : 루시아 스바르츠, 에바 라이멘스툴 - 동백꽃 그리움 : 김초혜

동백꽃 그리움 / 김초혜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 『편지』(김초혜, 시인생각, 2012)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첼로모음곡 1번Cello Suite No. 1 in G major BWV 1007 Prelude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Menuet I & II Gigue 루시아 스바르츠Lucia Swarts 첼로 네덜란드바흐협회Netherlands Bach Society https://www.youtube.com/watch?v=cGnZHIY_hoQ&t=403s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첼로모음곡 2번Cello ..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소식 : 이성선

소식 / 이성선 나무는 맑고 깨끗이 살아갑니다 ​그의 귀에 새벽 네 시의 달이 내려가 조용히 기댑니다 ​아무 다른 소식이 없어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이성선, 세계사, 2000)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vo 'February' 사육제(The Carnival) Allegro giusto 'March' 종달새의 노래(Song of the Lark) Andantino espressivo 'April' 눈송이(..

베토벤 바이올린소나타 4번, 슈만 바이올린소나타 2번,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소나타 1번 :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파벨 밀류코프 - 여우난골족(族) : 백석(1912~1996)​

여우난골족(族) / 백석(1912~1996) ​ ​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 얼굴에 별자국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넛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 육십 리라고 해서 파랗게 보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던 말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동이 작은 홍동이 배나무 ..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2번, 3번 : 기돈 크레머 - 겨울 사랑 : 고정희

겨울사랑 / 고정희 그 한번의 따뜻한 감촉 단 한번의 묵묵한 이별이 몇 번의 겨울을 버티게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고 활짝 활짝 문 열리던 밤의 모닥불 사이로 마음과 마음을 헤집고 푸르게 범람하던 치자꽃 향기, 소백산 한쪽을 들어올린 포옹, 혈관 속을 서서히 운행하던 별, 그 한번의 그윽한 기쁨 단 한번의 이윽한 진실이 내 일생을 버티게 할지도 모릅니다 -(고정희, 푸른숲, 1996)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1번Violin Partita no. 1 in B minor BWV 1002 Ⅰ. Allemanda Ⅱ. Double Ⅲ. Corrente Ⅳ. Double. Presto Ⅴ. Sarabande Ⅵ. Double Ⅶ. Tem..

베를리오즈 '이탈리아의 헤럴드' : 앙투안 타메스티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백석​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 백석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운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 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 - 『정본 백석 시집』(백석, 문학동네, 2020, 108쪽) 잠풍 날씨 : 잔풍殘風 날씨. 잔잔한 바람이 부는 날씨. 달재 : '달강어達江魚'의 방언(평북, 함남). 주둥이가 약간 길고 앞쪽이오목하며 몸에 가시가 많은 바닷물고기. 진장 : 진장..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산거(山居) 2 - 싸락눈 : 김남극

산거(山居) 2 / 김남극 - 싸락눈 ​ 밤새 누군가에게 아무 말이나 하고 싶었다 억울하다든가 슬프다든가 아니면 누군가가 그립다는 말 ​ 또 밤새 누군가가 보고도 싶었다 사랑했던 이든 지나며 눈길을 건넸던 사소한 이든 상관없었다 ​ 밤새 말과 얼굴이 시간을 꽉 채웠다 ​ 아침이 왔다 ​ 마당에 싸락눈이 조금 쌓였다 몇 발자국 걸으니 싸락싸락 내게 말을 건넨다 ​ 발밑에서 말을 건네는 눈송이들은 지난밤 그리움이었을 것이다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지상에 닿은 저 눈송이들은 지난밤 불면의 심사들이다 ​ 다들 말 못 하는 심사를 이렇게 발밑에서 싸락싸락 소리로 대신하는 것이다 ​ -(김남극 실천문학사, 2016)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