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6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라는 말 : 류시화​

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라는 말 / 류시화 ​ 물은 마른 입술을 더가까이 끌어당긴다는 말 원하는 것 갖기 전에 먼저 감사하라는 말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 헤어진 것보다 헤어진 방식이 더 아프다는 말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다른 사람이란 없다고 답했다는 말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좋다는 말 어떤 것들이 원을 그리며 떠나갈 때 원의 중심에 머물라는 말 고독을 이기려면 고독의 끝까지 가 봐야 한다는 말 세상은 나와 함께 시작되지 않았으며 나와 함께 끝나지도 않는다는 말 단지 나와 함께 살아 있다는 말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더 많은 불행한 사람이 있고 치유된 상처가 있으면 더 많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말 새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자신 안..

베토벤 바이올린소나타 9번 ‘크로이처소나타’ : 세르게이 크릴로프,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엔리코 파체 - 첼로 버전 : 알렉산드르 크냐제프,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 봄..

봄꿈을 꾸며 / 김종해 ​ 만약에 말이지요, 저의 임종 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 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 하느님께서 하문하신다면요, 저는 이월이요, 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 바로 언덕 너머 꽃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네 이월이요. 한 밤 두 밤 손꼽아 기다리던 꽃피는 봄이 코앞에 와 있기 때문이지요. 살구꽃, 산수유, 복사꽃잎 눈부시게 눈처럼 바람에 날리는 봄날이 언덕 너머 있기 때문이지요. 한평생 살아온 세상의 봄꿈이 언덕 너머 있어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행복했었노라고요. ​ - 『그대 앞에 봄이 있다』(김종해, 문학세계사, 2017)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바이올린소나타..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들꽃 : 이근배

들꽃 / 이근배 ​ ​ 이름을 가진 것이 이름 없는 것이 되어 이름 없어야 할 것이 이름을 가진 것이 되어 길가에 나와 앉았다. ​ 꼭 살아야 할 까닭도 목숨에 딸린 애련 같은 거 하나 없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물들이다가 바람에 살을 부비다가 외롭다가 잠시 이승에 댕겼다가 꺼진 반딧불처럼 고개를 떨군다. 뉘엿뉘엿 지는 세월 속으로만. ​ ​ -『살다가 보면』(이근배, 시인생각, 2013)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 I. Allegro ma non troppo II. Larghetto III. Rondo - Allegro ..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조그만 사랑노래 : 황동규​

조그만 사랑노래 / 황동규 ​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 -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황동규, 문학과지성사, 1978)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한다 : 류시화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한다 / 류시화 ​ ​ 이따금 나는 생각한다, 무당벌레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아니, 삶이 더 가벼울 것이라고 더 별의 눈동자와 닮을 것이라고 멀리 날지는 못해도 중력에 구속받지 않을 만큼은 날 수 있다 혼자 혹은 무리 지어 날 만큼은 아무도 그 삶에 개의치 않고 언제든 원하는 장소로 은둔하거나 실종될 수 있다 명색이 무당일 뿐 이듬해의 일을 점치지 않으며 죽음까지도 소란스럽지 않다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도착한다 운 좋으면 죽어서 날개하늘나리가 될 수 있고 더 운 좋으면 무로 사라질 수도 있다 어떤 결말이 기다린다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니까 아니, 기꺼이 원하니까 큰 순환에 자신을 내맡기는 기술은 이들을 따를 자가 없으니까 지구에서 일만 오천 ..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 : 김현태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 / 김현태 ​ 나는 사랑한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존재하는 것을 사랑한다. 길모퉁이를 돌아서 두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막차를 사랑하고 새벽이슬을 뒤섞어 마시는 맑디맑은 마지막 소주를 사랑하고 쓸쓸한 겨울 바닷가의 모래사장에 누군가가 남기고 간 마지막 발자국을 사랑한다. ​ 나는 사랑한다. 이 세상에 둘도 아닌 유일한 것만을 사랑한다. 첫날밤을 훔쳐보듯 밤하늘에 구멍 낸 달님의 눈빛을 사랑하고 아버지와 쏙 닮은 올챙이 같은 내 배꼽을 사랑하고 밤새 긁적거린 시 한 편과 함께 나란히 누운 새벽녘의 쓸쓸함을 사랑한다. ​ 나는 사랑한다. 이 세상 마지막이면서도 단 하나뿐이기에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그리하여 언젠가는 꼭 만나야 할 그 사람을 나는 사랑한다. 눈에서 가슴으로 스미는..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겨울 숲의 은유 : 나호열

겨울 숲의 은유 / 나호열 살아남기 위하여 단하나 남은 잎마저 떨구어 내는 나무들이 무섭다 저 혼신의 몸짓을 감싸는 차디찬 허공 슬픔을 잊기 위해서 더 큰 슬픔을 안아 들이는 눈물 없이는 봄을 기다릴 수 없다 - 시집 『칼과 집』(나호열, 시와시학사, 1993)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Piano Sonata No. 29 in B-flat major, Op. 106 "Hammerklavier" I. Allegro II. Scherzo : Assai vivace III. Adagio sostenuto IV. Introduzione : Largo...Allegro - Fuga : Allegro risoluto 그리고리 소콜로..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설국(雪國) : 권대웅

설국(雪國) / 권대웅 ​ 눈이 내린다 누군가 지상에 살며 저녁마다 켰던 등불이 내린다 어느 목련꽃 속을 지나왔을까 환하다 그 고요한 흰 미소 너머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는 설국 지붕마다 열 뼘 두께 눈이 쌓이고 며칠째 발이 묶인 주점 등불 아래 누군가 술을 마신다 맑은 술잔에 담긴 설원(雪原) 속으로 기차가 달린다 멀어져가는 불빛 한 점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밤의 긴 머리카락 ​ 하얗게 사랑해 하얗게 적멸이 되어 돌아오는 말과 꽃봉오리 속에 갇혀 지샌 눈의 날들 너무 환해 기억이 나지 않아 밤에도 하얬다 ​​ - 권대웅,『나는 누가 살다 간 여름일까​』(문학동네, 2017)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소면 : 류시화

소면 / 류시화 ​ ​ 당신은 소면을 삶고 나는 상을 차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살구나무 아래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집에 있어 온 오래된 나무 아래서 국수를 다 먹고 내 그릇과 자신의 그릇을 포개 놓은 뒤 당신은 나무의 주름진 팔꿈치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깐일 것이다 잠시 후면, 우리가 이곳에 없는 날이 오리라 열흘 전 내린 삼월의 눈처럼 봄날의 번개처럼 물 위에 이는 꽃과 바람처럼 이곳에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우리는 부재하리라 그 많은 생 중 하나에서 소면을 좋아하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던 우리는 여기에 없으리라 몇 번의 소란스러움이 지나면 나 혼자 혹은 당신 혼자 이 나무 아래 빈 의자 앞에 늦도록 앉아 있으리라 이것이 그것인가 이것이 전부인..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통痛 : 허형만

통痛 / 허형만 ​ 바람이 불면 허리가 아파오는 꽃처럼 네가 생각나는 날은 늘 이렇게 가슴이 저리단다 ​ -『눈 먼 사랑』(허형만, 시와사람, 2003)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 I. Allegro ma non troppo II. Larghetto III. Rondo - Allegro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imitri Chostakovitch(1906-1975) 교향곡15번Symphonie Nr. 15 A-Dur, op. 141 I. Allegretto II. Adagio–Largo III. Allegretto IV...